
츠이 - Midnight
기분이 좋은지 무의식에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후타쿠치를 시라부는 가만 바라보았다.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저 녀석이 오늘 왜 저리 기분이 좋은가 이리저리 고민을 해본다. 하지만 그다지 짐작이 가는 것은 없다. 다만, 어제부터 머릿속에서 떨어지지 않고 빙글빙글 돌고 있는 잊고 싶은 것이 계속 떠오를 뿐. 하지만 그것이 후타쿠치가 기분이 좋은 이유라고 시라부는 단정 짓고 싶지 않았다.
꽤 오랜만에 얼굴을 본 것 같다. 학교가 같은 것도 아니고 서로 부활동도 있으니 매일 얼굴을 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하려면 서로의 일정을 많이 맞추어야 했다. 그것에 대해 큰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오랜만에 데이트를 하려 만났는데 상대가 의아할 정도로 기분이 좋으면 왜 저럴까, 고민에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시라부는 후타쿠치가 자신과 있기에 기분이 좋은 거겠지 싶다가도 하루 이틀 만난 사이도 아닌데 새삼 저렇게 당황스러울 정도로 기분좋아할 일인가 싶어졌다. 자신도 기분이 나쁘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저 후타쿠치가 저렇게 계속 싱글벙글 웃으며 콧노래까지 부를 일인가? 시라부는 후타쿠치를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니. 너 좀 이상하다.”
시라부의 시선에 후타쿠치가 물었고 시라부는 덤덤히 말했다. 후타쿠치는 시라부의 말에 당황을 했는지 사례에 걸려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고 시라부는 조금 인상을 썼다. 정말 오늘 이상한데, 이 녀석. 가슴을 치며 기침을 겨우 멈춘 후타쿠치를 시라부는 위아래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눈을 마주치지 못 하고 안절부절 하며 시선을 돌리는 후타쿠치. 마치 찔리는 것이 있는 양 갑자기 시라부의 눈치를 본다. 시라부는 답지 않은 모습에 정말 무언가 켕기는 것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졌다. 그리고 어제 목격한 것이 머릿속에서 점점 더 또렷이 생각나고 있었다.
후타쿠치와 매니저로 보이던 여자와의 다정해 보이던 모습. 우연히 길에서 그 모습을 보았다. 시라부는 자신이 죄를 지은 것 마냥 몸을 숨겼고 둘은 즐거워 보이는 얼굴로 사라졌었다. 시라부는 그 모습에 깊은 의미를 두려 하진 않았다. 매니저랑 물건을 사러 갈 수도 있고, 그것이 무거우면 후타쿠치가 도와 줄 수도 있는 거겠지. 다만 자신이 그걸 숨어서 보았다는 것이 계속 찜찜하니 머리 한구석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런 후타쿠치의 모습을 보니 아닐 것이라는 건 충분히 알고 있는데 심술 맞은 생각이 난다.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
후타쿠치의 처음 보는 모습에 심술이 난다. 후타쿠치가 기분 좋은 것이 순전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에 확신을 가지지 못 하는 것이 심술이 난다. 혹시라도 아주 조금 이라도 후타쿠치의 기분에 자신이 아닌 무언가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면 더 할 수 없이 기분이 나빠진다. 속이 좁다고 해도 좋다. 질투가 심하다고 해도 할 수 없다. 시라부는 팔짱을 끼고 후타쿠치를 가만 노려보았다. 후타쿠치는 마른침을 삼키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아니, 아무것도 없는데.”
거짓말이 뻔 한 어색한 웃음. 시라부는 어이없음에 헛웃음을 지었다. 거짓말이 꽤 서투르다는 것 본인은 모르고 있겠지. 시라부는 밀려오는 짜증에 뻐근해오는 목덜미를 손으로 주무르며 후타쿠치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눈치를 보며 여전히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다. 어제 그 모습을 보고 오해를 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 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점에 더 화가 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일주일이 넘게 못 보았는데 오랜만에 본 얼굴이 다른 사람과 웃는 얼굴 이었다는 점이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저런 변명을 갖다 붙여 보았지만 결국 저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 머리 한편에 남아 있던 이유였다.
“나 간다.”
“뭐? 어딜 가.”
“집에.”
시라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더 이상 같이 있다가는 말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말할 것 같았다. 후타쿠치는 당황하며 시라부를 쫓아 일어났고 카페를 나와 걸어가는 시라부의 손목을 잡아 붙들었다. 시라부는 그 손을 뿌리쳤고 후타쿠치는 갑자기 화를 내는 시라부에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왜 그러는데.”
“그러는 너야말로.”
“내가 뭘?‘
“거짓말이나 하고 있잖아.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지?”
“없다고 했잖아.”
“너 바람피우냐?”
“뭐?”
황당함과 조금의 화가 섞인 후타쿠치의 표정. 시라부는 말 하고도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이었다. 시라부는 혀를 차고 고개를 숙였다. 후타쿠치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자신을 속였으니 나쁜 건 후타쿠치인데. 하지만 지금은 분명 자신의 실수였다.
“너 뭐라 그랬어?”
“…”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후타쿠치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시라부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알량한 자존심이 입을 떼지 못 하게 하고 있었다. 시라부는 지금이라도 아니라고 말을 할까 싶었지만 입은 생각과 다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너 여자랑 웃으면서 잘 다니더라.”
“뭐?”
“어제 봤어.”
후타쿠치는 시라부의 말에 인상을 썼다가 곧 표정이 바뀐다. 아차 하는 얼굴이다. 시라부는 그 얼굴에 오히려 더 놀랐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홧김에 한 말인데 저런 표정을 볼 줄은 몰랐다.
“그건..”
“간다.”
무어라 변명을 하려는 후타쿠치를 무시하고 시라부는 등을 돌려버렸다. 후타쿠치는 다시 쫓아와 시라부를 잡았지만 시라부는 그대로 뿌리치고 돌아섰다. 몇 번이나 쫓아오는 후타쿠치, 하지만 시라부는 더 이상 변명을 듣고 싶지도 않았고 그 얼굴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설마 후타쿠치가 바람을 피웠다고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 얼굴은.. 시라부는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아 입술을 깨물고 바닥을 찼다.
집에 돌아와 차분히 생각하니 그저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그만큼 후타쿠치의 그 당황한 얼굴도 계속 떠올랐다. 설마 정말로 바람을 피운 건 아니겠지? 머리로는 안다. 후타쿠치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 후로 후타쿠치에게 연락은 없다. 자신이 먼저 할까 고민을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료하게 시간 보내기를 했다. 빌려두었다 잊고 있던 생각보다 재미없는 영화를 보고 책을 뒤적거리고. 어느 샌가 밖은 해가 지고 밤이 왔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하지만 후타쿠치에게 연락은 없다.
곧 있으면 12시다. 시라부는 더 이상 연락을 기다리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어 잠을 자야겠다 싶어 불을 끄려는 순간 핸드폰이 울린다. 서둘러 보니 생일 축하 문자들이 쏟아진다. 같은 배구부 동료들의 문자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생일 이었던가? 자신의 생일을 잊고 있었다니, 시라부는 얼마나 날짜감각이 없이 살았나 싶었다. 그나저나 생일 전날에 그렇게 어이없는 이유로 싸우다니. 시라부는 헛웃음이 났다.
하나하나 축하 문자에 고맙다고 답장을 하고 이제야 비로소 누울까 싶은데 다시 핸드폰이 울린다. 아직 축하문자가 올 곳이 남았나 싶어 의아해 하며 보니 후타쿠치의 이름이 보인다. 시라부는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을 들킨 것 같아 괜히 민망해진다.
「집 앞이야, 나와.」
시라부는 깜짝 놀라 창밖을 바라보았다. 문 앞에 서 있는 후타쿠치가 보인다. 그의 모습에 놀라 가만 바라보는데 곧 후타쿠치도 시라부를 본다. 눈이 마주치고 후타쿠치의 얼굴을 제대로 보자 시라부는 잠시 숨을 한번 삼켰다가 서둘러 겉옷을 입었다.
문을 열고 후타쿠치의 얼굴을 보니 시라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왜 왔느냐는 말도. 그저 귀한 휴일에 데이트 하려던 것을 망쳤다는 생각만 들뿐. 그리고 불쑥 눈앞으로 내밀어 지는 꽃다발. 평소 같으면 무슨 꽃다발이냐고 타박을 주었을 텐데 화려한 빛깔의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한 꽃다발을 그저 묵묵히 받아들었다. 후타쿠치는 꽃다발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화해의 꽃다발인지, 생일 축하의 꽃다발인지. 문득 어울리지 않게 이걸 사두었다가 여기까지 들고 온 것인가 싶어서 웃음이 날 뻔했다.
“가자.”
후타쿠치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서 있는 시라부의 손을 잡고 걸었다. 시라부 집 근처 별이 잘 보이는 언덕으로 걸었다. 서로 맞잡은 손으로 서로의 체온이 느껴진다. 그것만으로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보같이 싸웠던 것도 이상한 생각을 하고 혼자 화냈던 것도, 자신의 눈치를 보았던 후타쿠치의 그 이상한 표정도 모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타쿠치의 손은 너무나 따스했고 같이 있다는 것이 너무도 좋았기에. 걸을 때마다 손에든 꽃다발이 바스락 거린다.
“여기가 별이 잘 보여. 동네가 보이는 것도 예쁘지.”
걸음을 멈춘 후타쿠치가 시라부에게 하늘을 보라 손가락질 한다. 까만 밤하늘에 아름다운 별이 총총 수놓아져 있다. 이 동네에 살면서 별을 보러 이곳에 온 적은 없었다. 후타쿠치는 이런 곳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자신과 함께 오려는 생각은 언제 한 걸까. 시라부는 후타쿠치의 손을 바라보다 하늘을 바라보고 낯설어 보이는 동네의 야경도 바라보았다.
“어젠 미안해.”
“…”
“네가 보았을 거란 생각은 못했어. 사실은.”
시라부는 그 뒤에 무슨 말이 나올까 괜히 긴장이 되었다.
“네 생일 선물 사러 간 거였는데.”
“어?”
“그런 거 잘 모르니까 도움 받아볼까 했지.”
“아..”
“하지만 잘못했어.”
시라부는 후타쿠치의 손끝을 쥐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자신이 목격한 것이 그럼 자신의 선물을 사러가던 모습 이었단 말인가. 시라부는 사과도 하지 못 하고 그저 땅만 바라보고 있었고 그런 시라부를 다 안다는 것처럼 후타쿠치는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도움 받고 그런 거 필요 없이 그냥 너랑 같이 갈걸 그랬어.”
“…”
“답지 않은 짓으로 들떠서 너 오해하게 만들 줄 알았으면 그냥 그럴걸.”
“후타쿠치..”
“대신 오늘은 제대로 데이트하자. 네 생일 축하하고 싶어.”
“…”
“생일 축하해, 시라부.”
부드럽게 웃는 얼굴, 다정한 목소리. 머리 위 밤하늘엔 별빛이 쏟아지고 아름다운 야경위에 우리 둘 뿐. 시라부는 그 어느 것보다 네가 나의 큰 생일 선물이라고 말을 하려다 그 말도 부족하단 생각에 말을 삼켰다. 대신 후타쿠치의 손을 잡았다. 마주 잡아오는 따뜻한 손. 시라부는 후타쿠치의 눈을 바라보다 웃었다. 이마에 살짝 입술이 닿았다 떨어진다. 바스락 거리는 손에 들린 화해의 꽃다발.
“고마워.”
“사랑해.”
“내 생일 선물 필요 없어.”
“왜?”
“네가 제일 큰 선물이니까.”
삼키던 말을 결국 뱉었다. 계속 삼키려 했으나 목이 간지러워 어쩔 수 없었다. 밤이라 다행이다. 새빨갛게 물든 얼굴을 들키지 않았을 테니. 후타쿠치는 웃었고 시라부도 웃었다. 네가 있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생일이다. 우리 둘이 함께 보낸 다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생일이다.
후타쿠치는 시라부를 품에 안고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생일 축하해, 켄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