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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 - le rêve

  도시의 소음과 맞물리는 공해들이 거리 구석마다 부류한다. 떠있는 것들은 형체가 없고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리고 서서히 기류에 잠식되어 또 다른 분신을 만들어나간다. 이것은 필시 오염의 과정이다.

  누군가 꼭 심술을 부린 것처럼 시야가 휘청거리는 것이 다른 사람이 보면 마약이라도 한 줄 알겠지만, 그렇지만. 시라부 켄지로를 에워싸고 있는 기류들이 온溫과 냉冷을 번갈아가며 도는 것이 꼭 저를 죽일 것 같단 생각에 온몸을 덜덜 떨어가며 거리를 걸었다. 눈가가 퀭하고 검푸르게 떠있는 것이 판자촌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것처럼 보인다.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고 도로에 꽂힌 기둥들에 의지해 걷다가도 금방 이는 현기증에 풀썩 가라앉고 만다. 힘이 풀린 다리는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하고 조용히 잠들어 간다. 하체로부터 시작된 체념의 기氣가 상체를 타고 매끄러운 눈알을 타고 뇌에 침범한다. 그리고 정신을 잠재운다. 자의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오직 숨을 내쉬고 뱉는 것 뿐이다. 그리고 곧 평면의 세계에 입성하게 되는 것이다.

 

 

 

  푸른 메밀밭이 맞이하는 적막함의 세계에는 오직 시라부 켄지로만이 보인다. 봉우리를 맺고 곧 꽃을 피워낼 하얀 메밀꽃은 헤매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 사이 우뚝 서있는 시라부 켄지로는. 영문도 모른 채 떨어진 것이 퍽 난감한지 고개를 이리저리 저어본다. 회백색의 거리 위에 서있던 시라부 켄지로와 메밀밭 위에 서있는 시라부 켄지로는 명백히 달라보인다. 흠집은 찾아 볼 수 없이 반질거리는 피부결에 가지런한 앞머리와 머릿결. 그리고 평소의 자신은 입어보지도 못했을 옷들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그러다 시라부 켄지로의 시야에 보인 것은 한 남자였다.

  아, 당신은 ⋯.

  무언가 외치려던 입이 스스로 머물러버린 것은 누구의 의지도 아니었다. 순간 기억속을 스치는 이미지와 닮은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당신이 여기에 ⋯? 급박히 심장의 박동수가 난폭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남자는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그리고 유연하게. 시라부 켄지로의 앞에 서서 손을 뻗었다.

  "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데, 이리 와줄 수 있겠나? "

  곧 그의 언어에 의해 겹쳐지는 손이 원래부터 하나였다는 듯 꼭 맞았다. 시라부 켄지로는 내민 손에 이끌리듯 남자가 나왔던 문을 열고 나가자, 자신이 걷던 흑백의 거리가 나타났다.

  거리는 시라부 켄지로가 걷고 보던 곳과 완벽하게 일치했고 달라진 점을 찾으라면 퀭한 눈가와 다르게 영롱히 빛을 내는 저의 눈동자, 그리고 제 손을 꼭 잡고 있는 옆의 남자가 다른 점이었다. 남자는 무엇이 그리도 소중한지 제 손을 자꾸만 어루만졌다. 거리를 걷는동안, 제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고 스킨십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탓에 위화감 같은 것은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리고 역시 자연스럽게 남자의 연인이 제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되고 있었는데, 언제부터 그 사실을 인정했는지는 서서히 기억이 흐릿해졌기에 생각하는 것은 그만두기로 한다. 남자와 걷는 모든 공간은 빛깔이 없다. 오직 흑黑과 백白이 존재하는 곳인것을, 오랫동안 걷던 동안 깨닫게 되었다. 남자는 처음 나눴던 몇 마디를 끝으로 더 이상 무어라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잡고 있는 손은 놓지 않고 여전히 꼭 잡아둔 채였다. 시라부 켄지로는 의아해하다가도 곧 태연해져서 남자의 옆에 좀 더 밀착해져갔고 남자는 그의 움직임을 받아들였다.

  남자는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 들어섰다. 그는 자연스럽게 제 몫까지 음료를 시키고나서 시라부 켄지로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다. 눈의 심연과 마주할 때까지. 뚫어져라 보다가도 다시 시선을 달리 한다든가, 괜히 시라부 켄지로의 손을 볼에 대고 있는다든가 등의 행동을 하다가도 " 정말 예쁘다. " 한 마디로 시라부 켄지로의 가만히 있던 어깨를 떨리게 하고는 했다. " 그런 말 아무렇게나 하지마요. " " 정말 예쁜 걸 어떡하겠나. " 그리곤 눈을 감고 입꼬리를 함께 올려 제 행복을 내뿜어버리는 것이다. 마지못해 시라부 켄지로가 웃자 남자는 곧 앞머리를 정리해주다가 음료가 나오자 조금만 기다려. 하고 일어섰다.

  새삼 다정함을 느끼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간 곳은 수없이 많았다. 굳이 나열하자면 길거리의 풍선을 샀다든가, 역시 길거리에서 파는 솜사탕 두 개를 모조리 시라부 켄지로에게 먹인다든가. 남자는 약국에 들러 밴드를 하나 사서 시라부 켄지로의 손에 쥐어주었다. " 어디 아프면 꼭 붙이도록 해. 다치는 건 정말 보기 싫을테니까. " 하곤 다시 일전의 웃음처럼 웃는 것이었다. 시라부 켄지로는 남자의 말에 고개를 두 어번 끄덕이며 손에 들린 밴드를 꼭 쥐었다. 그리고 남자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빛이 스며들지 않는 좁은 골목이었는데, 남자는 이리와보라며 시라부 켄지로를 이끌었다. 그리고 골목 안에 다다르자, 검푸른 배경이 시라부 켄지로와 남자를 에워쌌다. 레스토랑의 화려한 샹들리에의 조명과 붉은 카펫따위는 부럽지 않을정도로 로맨틱함은 제가 겪어온 삶 중 제일이라고 느껴졌다. 장소나 소음따위는 끼어들 공간이 없이 빽빽하게 남자와 시라부 켄지로로 오롯이 채워진 공간이 되는 것이다. 남자는 시라부 켄지로와 마주 서서 두 손을 꼭 붙잡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작은 케이스를 꺼내 열었다. 열린 케이스 안에 들어있는 것은 희미한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반지였다.

  " 이게 뭐에요? "

  " 우리가 만난 지 10년 하고도 8년이 되었지. 그동안 잘 지냈겠지. "

  갑자기 떠올려지는 수많은 남자와의 기억이 물밀듯 밀려왔다. 이런 기억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는데⋯하다가도 곧 고개는 끄덕여지게 되었다.

  "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아마도 네가 나를 떠올렸을 때부터겠지. "

  그리곤 케이스 안의 반지를 꺼내주며 시라부 켄지로의 약지에 끼워주었다. 원래부터 주인인 것처럼 꼭 맞는 반지가 마음에 들기까지 했다.

  " 별을 이어서 만들었어. 너는 돌아갈 수 있을거야. "

  " 내가 기억난다고 해도 너는 곧 잊을테니까... "

  그 무엇보다 깊고 그윽한 눈빛으로 보던 남자와 시라부 켄지로의 사이가 좁혀지고 마침내 입술이 맞닿았다. 남자의 커다란 손이 시라부 켄지로의 얼굴을 감싸고 서로를 받아들일 때, 유성은 시기하듯 빠르게 지나갔다. 불이 번지듯 그들은 화려하게 타들어간다. 곧 짧은 입맞춤이 끝나고 입술이 떨어질 때 시라부 켄지로와 남자의 눈이 마주친다.

  " 와줘서 고마워. 널 정말로 좋아했어, 아니 좋아한다. ... 꿈이니까, 나는 잊는거야. 사랑해, 시라부 켄지로. 너의- "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세계가 순식간에 새하얗게 변하고 눈 앞의 남자도 완벽하게 사라졌다. 입술의 감촉과 남자의 언어가 저를 두드리고 간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진정하기도 전에 사라져버린 남자의 온기와 무언가를 눈으로 계속해서 좇았다. 그러다 문득 시야가 흐릿해지는 것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은 곧 깨어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새하얀 천장이었다. 천장은 유독 하얗게 보이는 것은 기분탓이리라. 그러다 문득 깨달은 것이 눈가가 촉촉했던 것인데, 오랫동안 울었는지 눈물자욱이 진하게 남아있었다. 내가 왜 울었지- 하고 생각하다가도 다시 잊어버린 시라부 켄지로는 입을 몇 번 벙긋거리고는 이내 잠에 다시 들었다.

  생-일-축-하-해.

본 페이지는 편의상 존칭을 생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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