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이다 - 사랑을 주어야지
너에게 사랑받지 못할까 봐 무서워서.
들뜸과 긴장으로 덮인 것 같아 유독 더 시끌벅적했다. 같은 패턴의 일상에도 이런 특별한 일이 하나 있음에 감사했다. 특히나 더욱 즐거워 보이는 그의 앞머리가 평소보다 더 들떠 보인다. 두 손가락으로 꾹꾹 누른 앞머리는 그 짙은 눈썹을 덮지 못한 채였다. 무언가 기대에 잠긴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기대에 풍덩 빠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모양이 선배인 오히라 레온의 눈에는 꽤나 귀여워 보였다. 날 좋은 오월. 기분 좋은 바람이 함께하는 오월의 문 앞에서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 사람 하나 없었다. 특히나 누군가를 축하해주기 위한 시간이란 너무나 특별하고 소중했다. 그 누군가가 특별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특별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서툴게 꾸민 장식들이 빛과 인사하며 반짝였다. 아기자기하게 그려진 꽃들은 어느 들의 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예뻤다. 하지만 무엇보다는 내색하지 않아도 기뻐할 그 사람의 모습이 더 빛나고 예쁠 것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고시키. 혹시 아는 척하고 다니지는 않았겠지?]
[저, 저를 무얼로 보시는 겁니까.]
툭. 제 팔뚝을 쳐오는 무심한 행동에도 놀라 움찔했으나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혼자 안심하더라. 다 같이 아는 척 한 번 하지 말자며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올려 제안하던 텐도 사토리였다. 고시키가 쉽게 허락할 리는 없었다. 겉이 아무리 사나워도 여리다구여, 삐질 수도 있다구요! 급하게 선배들을 뜯어말리었지만 오히려 삐진 모습을 볼 수도 있지 않겠냐며 유혹해온 세미 에이타에 못 이기는 척하고 동참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몰래 놀랠 준비를 하면서까지도 오늘 하루 고시키는 시라부 켄지로와 대화 한 마디 제대로 나누지 않았다. 등굣길이면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 인사하고 난 후에 깜짝 놀랐지만 절대 티는 안 내는 시라부를 보거나, 애써 무시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침의 행복이었다. 습관적으로 아침을 따라 시라부의 뒤에서 갈등만 질근질근 씹다가 지각이나 해버렸다.
넓은 학교라고 하루 종일 보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평소 같으면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 결국 2학년 4반까지 찾아가 선배, 시라부 선배! 소리를 지르고서야 부끄러워 얼굴도 못 들고 나와서 날리는 등짝 스매싱을 맞으면 안심을 되찾았다. 직접 찾아가야 볼 수 있던 얼굴을 무려 오늘만 하여도 세 번이나 마주쳤다. 세 번. 무려 세 번이었다. 주먹을 씹으며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코가 찡해지고 눈물이 앞을 가리는 고통을 삼켜가며 무시해야 했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이렇게까지 무시해야 했을까. 무려 우시지마 와카토시는 시라부의 수줍은 아침 인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주고 난 후에 무시하자던 약속을 떠올렸다. 고시키는 이 말을 듣고 뒷목을 잡았다.
[온다!]
긴장감에 두근대는 심장소리가 흘러넘친다. 귀를 찌르는 목소리에 덜컥 마무리가 덜 된 장식이 흔들렸다. 횡설수설 대는 모습이 엉성하다. 떠밀려 오는 시라부의 불평 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오자 서로의 위치조차도 헷갈려 발을 동동 굴렀다. 드르륵, 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시, 시라부!] 삐끗한 레온의 목소리가 작은 교실의 벽을 타고 안을 울리자 뒤이어 부원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꿈뻑. 다시 꿈뻑. 꽤나 느리게 눈을 두어 번 껌뻑이던 눈이 상황 파악이 되었다는 듯이 삐뚤삐뚤한 글씨와 장식을 보고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예상보다는 좋은 반응이라며 하나둘 웃음꽃이 번지기 시작하던 때에 시라부의 얼굴에는 웃음 대신 정안이 자리 잡았고, 다시 한 번 문이 움직였다. 드르륵, 쿵. 이번에는 부원들에게 상황 파악이 필요했나 보다. 시라부가 금방 화났다는 듯이 성질을 꾸욱꾸욱 누른 발걸음으로 나가버리자 두말할 것도 없이 고시키가 먼저 뛰쳐나갔다.
의문만 머금고 어리둥절한 상황에 나가버린 고시키와 벌써 복도 저 끝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시라부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았다. 우시지마가 참고 있던 숨을 불어내리자 물어 준비하던 호루라기 풍선이 힘 없이 청량한 소리를 내었다.
선배, 선배. 다급함이 잔뜩 끼어있는 목소리에도 시라부는 멈추지 않았다. 저딴 유치한걸. 저딴 것 때문에 하루 종일. 금방이라도 귀에서 수증기라도 뿜어져 나올 것 같다. 울그락불그락 벌게진 시라부는 계속해서 욕지거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금방 따라잡힐 걸 알면서도 끝까지 뒤돌아보지 않았다. 확하고 잡힌 어깨가 뒤집혔다. 순식간에 마주해버린 눈에도 당황하지 않은 시선으로 고시키를 보았다.
귀찮다고 생각할 뿐이었으며 시끄러운 것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일상 속에 녹아들고서 아무렇지도 않게 섞여있는 놈이 미웠다. 일그러지는 표정을 막을 이유는 없었다. 오늘 온종일, 계속. 단지 오늘 하루. 아무 말도 안 했고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다. 눈을 마주친 것은 몇 시간 만인지 모르겠다. 이런 것을 인지하고 신경 쓰고 있는 것조차도 싫었다. 좋다고 졸졸 따라다닐 때에는 언제고. 꼬리 하나라도 달고 다니다가 금방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불안에 떨던 심중이 와르르 무너졌다. 얼굴을 몇 초나 보고서야 화났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매일 보던 얼굴에 항상 보던 찡그림에도 마음이 언짢았다. 보고 싶던 얼굴에 그려진 불편함을 지워주고 싶었다. 고시키는 적어도 그랬다.
[그러니까..., 선배 생일. 축하해주고 싶었어요.]
[ㅡ.]
[나쁜 뜻은 없었다니까요.]
쩔쩔매는 것이 잘못을 저지르고 주인을 마주한 강아지 마냥 어쩔 줄 몰라 했다. 생일이면 그러지 말았어야지. 억누르는 진심이 아프다. 입을 꾹 다물고만 있으면 눈높이를 맞추어 숙여주는 놈이 제 시야에 들어왔다. 많이 화났어요? 평소와 달리 가라앉은 목소리도 신경 쓰였다. [어.] 하고 짧게 대답하니 이제 어쩔 거냐는 듯한 시라부의 표정이 걸린다. 그러면 당황에 물든 얼굴이 귀여웠다. 저 말고 선배들도 많이 준비했어요. 선배가 좋아하기를 원했..., 는, 데.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래보았자 한 살 적은 일학년. 부 활동의 후배.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놈이었다. 붙어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힘들었다. 그냥, 그저 한마디로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이 불안하고 힘들었다. 고시키가 시라부의 눈치를 보았다. 여전히 좋지 못한 얼굴에 코를 한 번 찡그리고는 무언가 말하려 입을 떼니 가로막혀 눈을 껌뻑였다. 고시키. 불린 이름에 움찔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내 뒤에 있어야 해. 뒤가 아니라 옆도 괜찮아. 인사는 볼 때마다 해야 해. 내 주위에 누가 있든 상관없어. 아, 우시지마 선배를 제외하고. 네 목소리는 한 시간에 한 번씩 들려주어. 학교 밖에서는 가까이 와서 말해. 멀리서 외치는 소리는 쪽팔리니까. 사랑한다는 말은 하루에 한 번 필수. 알아 들어? 얼빠진 얼굴을 한 고시키에게 묻자 네, 네. 고개를 격하게 흔들며 대답하는 꼴이었다. 시라부는 결국 인정해 버린 꼴이었다. 그가 없으면 안정치 못한 제 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것을 그에게 전했다. 고시키는 뒤돌아 다시 왔던 곳을 돌아가는 시라부의 등을 보더니 곧 긴 다리를 휘적거리며 성큼성큼 다가가 뒤에서 안아주었다. 저는 당신밖에 없는걸요. 언제나 진심을 말했고, 지금은 진심을 속삭였다. 감긴 허리에 놀란 눈치였던 시라부가 다시 뒤돌아 희소를 그려낸 고시키와 마주했다.
[너에게 사랑받지 못 할까 봐 무서워서.]
[저는 언제나 드리고 있었어요.]
[오늘은 아니었어.]
[앞으로 속죄하며 살게요.]
[아니.]
두 손으로 감싼 얼굴에 따라 웃음을 그린 시라부가 말했다. 속죄가 아니라, 사랑을 주어야지. 단정한 말높이에 고시키는 다시 한 번 반했다. 함께 길을 돌아가는 동안에도 행복했다. 진심과 사랑을 약속했다. 그의 생일을 축하하면서, 기분 좋은 오월과 사랑을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