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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봉 - 구미호

“옛날 옛적에 구미호가 살았다는 사실을 믿어?”

“에이~ 그런 고전 설화를 누가 믿어”

 

구미호 (九尾狐)

 

남자의 간을 빼먹고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미소 짓는 시라부.

99번째 남자가 물고 있던 여의주를 꺼내면서 유유히 사라졌음

 

드디어 마지막이다.

이제 한 명만.. 간 한 개만 더 먹으면 인간이 될 수 있어

 

마지막 100번째 사람을 찾아 헤매는 시라부

그러다 한 남자와 눈이 마주치는데 시라부는 아, 이 사람이다 싶었음

지금까지 100명 채우려고 닥치는 대로 간을 빼먹었는데 마지막이니 괜찮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시라부였어 시라부는 타깃을 정하고 바로 남자의 뒷조사를 하기 시작했음

이름은 세미 에이타.

문무 뛰어나고 올해 혼기가 찬 나이가 돼서 혼사가 물밀 듯 들어온다는 사람이었음

‘흐음~ 이 정도면 꽤 괜찮네’

시라부는 비릿하게 웃으면서 세미와 결혼할 계획을 짜기 시작함

사람을 홀리는 건 시라부의 주전공이니 어렵지 않게 세미의 집안과 견줄 수 있는 집안의 여식이 됨.

 

시간이 지나고 결국 시라부의 바람대로 세미와 혼인을 함.

혼인하고 부부가 되어 누구보다 곁에서 세미를 지켜봤는데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더 괜찮은 남자였음.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시라부 생각났다고 노리개를 사 오는 날도 빈번했고 어느 날은 꽃을 한 무더기 가져와 버려 당황한 시라부가

“서방님 본디 꽃은 함부로 꺾는 게 아닌 것을. 어찌 이만큼 꺾었습니까?”하고 타박하자

“내 어여쁜 것을 보면 저절로 부인 생각이 나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하면서 미안한 표정을 지음.

“맘에 안드십니까..?”하면서 축 처진 모습을 하는 세미가 귀여서 시라부는 살포시 웃음

그런 시라부의 미소를 보고 세미는 더 환히 웃음

“부인의 웃는 얼굴을 보면 내 지금까지 쌓인 노고들이 싹 풀리는 기분입니다. 앞으로 안 그럴 테니 이번 한 번만 봐주시지요” 하면서 꽃을 안겨줌

“내 이번만 눈 감아드릴 테니. 다시는 그러지 마십시오. 본디 꽃도 생명이고 생명은 소중히 다뤄야 합니다.” 꽃을 안아 들면서 찬찬히 살피며 당부하는 시라부 나오는 말은 엄하지만, 목소리에는 부드러움이 깔려있었음.

“부인”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세미를 바라보는데 그 틈에 뽀뽀하는 세미.

“선녀가 꽃을 들고 있는 게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하고 붉어진 얼굴을 한 채 방으로 들어감.

얼떨떨한 시라부는 멍하게 있다가 상황 파악을 하고 화르르 귀까지 빨개짐

 

세미가 꺾어다 준 꽃을 예쁘게 화병에 넣기도 하고 몇 개는 말려두는 시라부

그렇게 꽃을 정리하면서 생각에 빠짐.

사실 오늘이 세미의 간을 먹겠다고 결심한 날이었음.

하지만 세미와의 생활이 하루하루 꿈처럼 달콤했지. 100명과 혼인하는 동안 자신을 이렇게 사랑해주는 사람도 아껴주는 사람도 다 세미가 처음이었거든. 이 행복한 나날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세미의 간을 먹지 않음 자신은 영영 인간이 될 수 없었음

“하.. 어쩌지..”

고민에 빠진 시라부.

 

????

머리에 뭐가 얹혀진 느낌이 들어 봤는데 세미가 자신에게 화관을 씌어주었음

“부인 무슨 근심이 있습니까?”

“네?”

“오늘 종일 기력이 없어 보입니다. 혹, 고뿔에 걸린 게 아닙니까?”

허둥대며 시라부의 이마에 손을 짚어 열을 재보는데 그런 세미의 손을 부드럽게 잡는 시라부.

“아닙니다. 저는 괜찮으니 걱정 넣어두세요.”

그런 시라부의 말의 안심이 되어 옆에 앉는 세미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서방님이 주신 꽃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아, 지금 주신 이 화관은 어디서 나셨습니까? 혹여나 또 꽃을 꺾으신 게 아닐 테지요?”

“아닙니다! 이건 부인께서 화병에 넣은 걸로 만든 겁니다! 오늘 종일 기운이 없어 보이길래 기뻐하는 모습이 보고싶었습니다.”

“...화병에 있는 거 다 쓰셨습니다?”

“다는 아니고 거의...?”

“제가 일부로 제일 어여쁜 꽃만 골랐는데.!!.. 휴.. 됐습니다..”

“부인 제가 알고 그런게 아니라”

“됐습니다. 서방님은 저 서책이나 마저 읽으십시오”

종일 투덜거리는 시라부는 정작 화관을 벗지 않고 종일 하고 다녔음

그런 시라부를 세미도 알아 화관에 대해 일부로 말 안 하고 흐뭇하게 바라봤음.

화관은 모양대로 예쁘게 말리고 말리던 꽃을 세미가 도로 화병에 넣는 걸로 마무리했음.

 

결국, 그 날은 세미의 간을 먹는 걸 포기했어.

하루 이틀 한달.. 시간이 지날수록 세미를 죽이는 것이 두려운 시라부.

이쯤이면 자신도 세미를 연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음.

세미에 대한 마음을 깨닫자 그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와 자신을 질식시키는 것 같았음

그리고 다짐하지 5월 4일..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날.

그 날까지만 세미 곁에 있자고.

 

***

 

시라부의 마음을 모른다는 듯이 시간은 애석하게도 빨리 지나갔음.

다짐한 5월 4일.

평소와 같이 세미와 산책하고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는 시라부.

다른 점이 있다면 시라부의 생일을 맞아 더 지극 정성으로 시라부를 챙기는 세미.

평소 같았으면 그만하라고 했을 텐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세미의 모습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려고 얌전히 세미의 사랑을 받는 시라부.

 

그렇게 어느 때와 조금 특별한 하루를 보내고 세미가 잠든걸 확인함. 마지막으로 세미 몸에 넣어놨던 여의주를 꺼내고 떠날 준비를 하는 시라부.

“안녕, 내 사랑. 그동안 고마웠어요. 이런 날 용서 하지 마요.”

전하지 못할 작별인사를 하고 자리를 뜨려는데 시라부의 손목을 잡는 세미.

“어디 가십니까”

“저.. 그.. 잠이 안 와서 잠깐 바람 좀 쐬려고..”

놀란 시라부는 떨리는 목소리로 변명하기 시작했음.

그런 시라부를 무표정으로 쳐다보는 세미.

“같이 가요”

“네?”

“오늘은 부인 생일이잖습니까. 혼자 둘 수 없어요.”

“... 요 앞에 잠깐 나가는 겁니다. 금방 돌아올 거에요”

“거짓말.”

“네?”

“부인은 거짓말을 할 때 항상 그렇게 눈을 못 마주칩니다”

말을 듣고 흔들리는 눈으로 세미를 바라보는 시라부.

그런 시라부의 안으면서 천천히 말함.

“사실 다 알고 있었습니다. 부인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오늘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도. 부인이 저를 얼마큼 연모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세미의 말에 눈물이 차오르는 시라부

“그러니까 당신의 오랜 소망을 이루세요. 저는 부인이 행복하다면 그게 가장 큰 기쁨입니다.”

시라부는 세미의 말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음

“그게 무슨 뜻인 줄 알고 하는 말씀이십니까? 싫습니다. 저는 싫습니다. 저는 당신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어요. 싫어요. 싫습니다!”

싫다고 버티는 시라부를 억지로 떼놓는 세미.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거뿐이니 이런 저를 용서해주세요.”

품에 있던 단검을 꺼내 심장을 찌르는 세미

시라부는 절규함. 죽어가는 세미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껴안고 오열함

“왜!! 왜 그러셨습니까!! 저는 이제 어떻게 살라고요!!!”

“제가 마지막으로 드리는 선물입니다. 어서 제 간을 가져가세요. 저는 당신의 소망을 이뤄줄 수 있는 거면 행복합니다. 그동안 제 옆에 사랑을 알려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에요.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해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 세미.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자신이 너무 저주스러운 시라부. 절망하는 마음을 위로하듯 밖은 여우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음.

시라부는 오랫동안 감춰둔 자신의 본모습을 꺼냄. 그리고 여의주를 다시 꺼내서 부숴버림.

여의주를 부순다는 것은 세미를 따라가겠다는 뜻이었어.

“이제 필요없어.. 지긋지긋한 영생도 사람이 되고 싶다는 희망도. 다 필요 없어.”

처음으로 세미 앞에서 본모습을 보였지만 보지 못하는 세미. 그 앞에서 울면서 점점 소멸하는 시라부. 밖은 아직도 여우비가 내리고 있었음

 

***

 

20XX.0X.XX 시라토리자와 체육관

 

타앙!!

 

귀에 꽂히는 배구공 소리. 현 내 최강이라 불리는 시라토리자와 배구부다.

“다들 그만!! 신입 부원들이 왔다. 인사 나누도록!”

연습하던 2학년, 3학년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연습을 멈추고 새로 배구부에 들어온 1학년들과 인사를 나눔

“안녕하십니다. 시라부 켄지로 입니다. 중학교에서 세터를 맡았습니다.”

관심 없던 세미는 시라부 켄지로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설마설마하고 시라부를 봄.

그리고 눈이 마주치자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음.

시라부 켄지로. 자신이 전생에 죽을 만큼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의 눈앞에 있음

사실 자살한 죗값으로 전생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세미.

18년 동안 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런 세미의 노력을 비웃는 듯이 매일 밤 죽은 자신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시라부의 모습이 꿈에 나타났음.

세미는 시라부를 보면 뛰는 심장이 자신의 감정이라고 생각 안 했음. 전생의 비극적인 기억 때문에 그 영향이라고 생각하고 시라부를 피해 다녔지.

 

그리고 시라부는 시라부대로 짜증 났어.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대놓고 피하는 선배가 거슬리기 짝이 없거든.

오늘도 자신을 피하는 세미에 짜증이 확 난 시라부는 세미 앞을 막아섬.

“선배 저랑 이야기 좀 해요.”

자신을 막아선 시라부을 보는데 눈을 마주치고 시라부의 얼굴을 제대로 본 건 시라부가 부에 들어오고 처음 이여서 눈을 못 떼는 세미.

‘이런 올곧은 눈을 하고 있구나’

그렇게 계속 시라부를 쳐다보는데 말이 없는 세미가 답답한지 시라부가 세미의 손을 확 잡고 이끎.

잡힌 손이 홧홧 이 달아오르는 것 같아 잡아 빼려는데, 그런 세미를 안다는 듯이

“도망갈 생각 하지 마세요” 하면서 더 세게 잡는 시라부.

예나 지금이나 단호한 모습을 보니 변한 게 없어 보여 웃음이 나옴.

 

인적이 드문 체육관 뒤편에 도착하자 시라부가 세미를 돌아보는데 보이는 건 세미의 활짝 웃는 얼굴.

시라부는 영문을 모르겠지. 이 선배 조증 있나? 진지하게 고민하는데 세미가 입을 먼저 뗌

“네가 무슨 말 할지 알아. 미안해. 네가 싫어서 피한 건 아니야”

자신이 할 말을 빼앗긴 시라부는 입술만 달싹이고 있었음

“앞으로 안 피할게 한 번만 용서해주라”

“네.. 다신 그러지 마세요”

 

***

 

그 날 이후 확실히 세미는 시라부를 피하지 않았음. 오히려 주위를 맴돈다 해야 하나? 시라부 곁을 떠나지 않았어.

시라부는 거슬릴 법도 한데 이상하게 세미가 자기 곁에서 자신을 챙겨주는 게 귀찮지 않았음.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세미의 다정함에 점점 마음을 빼앗길 때쯤

5월 4일 시라부의 생일이 다가왔음

세미는 전생의 기억 때문에 초조했어.

평소보다 더 시라부를 지극정성으로 챙기고 곁에 붙어있는 세미.

시라부는 원래 이런 사람인 줄 알고 있었지만 자기의 마음도 모르고 더 붙어오니 한숨이 나왔어.

 

“세미상.”

“어??”

“오늘 이상해요.”

“..그래? 나는 모르겠는데?”

시라부의 눈을 피하면서 변명하는 세미

변명하는 말에 눈을 가늘게 뜨며 세미를 계속 쳐다봄.

“세미상은 거짓말을 할 때 항상 그렇게 눈을 못 맞추죠”

그리고 문득 생각난 전생에서의 오늘 자신이 했던 말.

 

“부인은 거짓말을 할 때 항상 그렇게 눈을 못 마주칩니다”

 

갑작스럽게 심장을 꿰뚫는 기억에 눈물이 나오는 세미

갑자기 우는 세미에 당황한 건 시라부였음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우는 세미에 안절부절못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손수건을 건넴

세미는 손수건을 건네는 시라부의 손을 당기면서 꼭 안음.

“시라부 내가 할 말이 있어”

“네”

떨리는 목소리에 시라부는 괜찮다는 듯이 세미의 등을 토닥여줌

“이게 지금 완벽한 내 감정인지는 모르겠는데 이거 하나 확신할 수 있어 널 사랑해 시라부.”

잘게 떨리는 몸과 물기 어린 목소리로 절절하게 고백하는 세미.

“세미상 이거 반칙이에요. 이러면 누가 거절해요”

“시라부 내가 언제까지 곁에 있어 줄게”

“네”

“사랑해”

“저도 사랑해요”

그렇게 둘은 전생에서 못다 한 사랑을 다시 한번 이어가기 시작함.

본 페이지는 편의상 존칭을 생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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